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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회복해야 산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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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운주당이란 곳에서 소통, 원균은 이를 폐쇄
가정은 작은 전쟁터, 소통은 필수적
신뢰는 상대방의 건강하고 선순환적인 일관성으로 인해 얻어지는 결과
나라는 큰 가정과 같아 정부가 소통하지 못한다면 패망의 길로 갈 것

 

 

한산도에서 머무는 동안 이순신 장군에게는 '운주당(運籌堂)'이라 이름한 서재가 있었다고 한다. 개인 집무실 겸 독서 공간으로 사용했던 이곳은 그 기본목적과는 달리 매일 밤 건물의 불이 꺼지지 않고 늘 술 마시며 떠드는 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운주당은 요샛말로 말하면 24시간 운영되는 복합문화시설과도 같아서 간부와 졸병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까지도 출입이 자유로웠던 곳이라고 한다. 이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화(話), 의(議), 논(論) 때문이라는데, 이 장군은 주위의 모든 사람과 대화하고, 의논하고, 토론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 기록에서 이 장군은 사병들뿐 아니라 민간인들과도 자주 어울려 술을 마셨다는데 이는 해당 지역에서 태어난 군사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해안과 물길과 지형처럼 보이지 않는 지역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 장군은 이런 정보들을 얻으면 반드시 다음 날 현지로 나가 그 정보를 확인하고 완벽하게 숙지했다는 이야기다. 그 덕분에 학익진 같은 창조적 전략을 펼쳐 적을 격파할 수 있었다. 세계 해전사에도 탁월한 장군으로 칭송을 받는 이유는 아마 이순신 장군의 '경청력'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순신 장군을 이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사람은 원균이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운주당을 폐쇄했다. 자기 외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특별구역으로 지정한 것이다. 높은 대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참모들까지도 특별한 일 아니면 접근하지 못하도록 단도리를 했다. 차별로 차이를 냈고, 구별했으며, 매우 엄격한 선별을 통해 측근을 만들었다. 그는 자기 말만 고수했고, 측근의 말만 신뢰했다. 처음 온 지역인데, 그 지역인들에게 묻지 않았으며,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원균이 이끄는 수군은 정유재란 시기인 1597년 7월, 칠천해전에서 왜군의 교란작전에 말려 전멸했다. 원균은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가정은 작은 전쟁터라고도 한다. 절대 전쟁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데도 여차하면 싸우고 있고, 저차하면 전투 중이다. 왜 그러냐고 굳이 묻는다면, 이순신 장군의 운주당 같이 가정을 운영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원균 같은 장군이 집안의 마스터여서 그렇다고 설명을 덧붙일 것이다. 가족이야말로 화, 의, 논이 기본적인 관계의 도구여야 하는데, 가족이라면서도 대화와 소통이 안 되니 가족관계가 꽉 막힌 막다른 길과 같게 된다. 대화가 불통이면 내뱉은 언어들끼리 서로 부딪혀 교통이 엉망이 되고 정리할 수 없게 된다. 교통사고가 여기저기서 일어나 관계의 길들은 막혀버리고 가족관계 상황은 날로 험악하고 어려워진다. 교통정리가 안 되다 보니 유통할 수 없고 형통은 불가능한 현실이 된다. 그래서 대화는 소통이요, 소통은 교통을 이루며, 교통은 유통 사업이 잘 되게 하고, 유통이 잘 되면 형통하다는 것이 행복한 관계를 위한 대화공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화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었다. 희망을 전했고, '사람이 먼저'라는 가치를 전했었다. 그런데... 사기 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대화할 수 없는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기 국민은 총살을 당하던지 화형에 처하든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개천절에 국기를 차에 꽂을 수도 없도록 혹독히 단속하고, 이 귀하고 중요한 날 차벽을 세워 광화문 쪽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 시민들이 경찰과 군인과 맞붙어 서로 죽고 죽이고, 화염병을 던져 차를 불태우고, 도심은 무법천지가 되어야만 민주화운동이 되는 것인지...... 국민이 개천절에 태극기를 들고 개천절을 기뻐할 수 없도록 다 막아 버렸다. 태극기를 차에 꽂고 다닐 수도 없고, 차 안에 두고 다닐 수도 없는 그런 나라로 전락해버렸다. 코로나 방역이 이유였지만 너무 큰 것을 잃었다. 혹 북한의 인공기를 손에 들고 인공기를 차에 꽂고 나타났으면, 개인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광화문 쪽으로 들여보내 줬으려나 모르겠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이나 백화점 푸드코트 같은 곳은 그냥 내버려 두면서, 편애하듯 힘 없고 못 사는 국민들만 더 못살게 만들고 있다. 지정된 몇 곳만 들쑤셔대는 방역에도 더 이상 속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국민은 코로나 때문에 부모님도 못 만나고 할 수 없이 자숙하고 있는데, 외교부 장관 남편은 미국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단다. 참 모범이 안 되는 정부다. 대통령이 자국민에 대해서는 혹독하고 자국민을 해치는 북한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한 것처럼, 그의 정부인사들도 그러한가 보다. 한 번도 대한민국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중국에 대해서는 비굴할 정도로 머리를 숙이니, 빚진 것이 있어도 단단히 빚진 자인가보다. 그렇게 국민과 대화한다더니, 국민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커녕, 원균처럼 대나무 울타리만 하늘을 찌른다. 해야 할 일이 이미 정해진 상태라 국민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비천하고 미천한 국민일 뿐이니 어찌 그 높으신 양반이 대화할 필요가 있겠는가.

 

 

신뢰는 상대방의 건강하고 선순환적인 일관성으로 인해 얻어지는 결과다. 그러나 변질된 일관성도 변질된 신뢰를 결과로 얻게 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낚시를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일관성 있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 또한 색깔이 다른 신뢰를 얻게 하는 일관성이 된다. 이번엔 꼭 낚시터에 낚시하러 갈 것이라고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이고 손가락을 여러 번 잠그고 풀고 했어도, 아들은 그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는다. 변질된 신뢰가 내재된 것이다. 아버지가 또 거짓말한다고 믿게 된 것이란 말이다.

 

나라는 큰 가정이다.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라에서도 일어난다. 아버지가 원균처럼 근본적으로 소통이 안 되는 자라면 그 가정은 아주 작은 교란작전에도 패망하게 되는 것이 기본이다. 화, 의, 논은 가정이나 나라의 형통을 위한 관계의 기본도구다. 가정 안에 운주당을 설치하고, 그 턱을 낮추고, 전쟁하지 말고, 대화해야 하는 것처럼, 나라도 이순신 장군처럼 운주당을 운영하여 국민과 대화하려고 애써야 한다. 차벽을 쌓아 차별하지 말고, 가족을 사랑하듯, 진짜 이 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국민은 이 나라를 사랑해서 광화문에 오지 말라고 하면 쓴 물이 올라와도 안 가는데, 장관이든, 그 남편이든, 그 아들이든, 대통령이든, 전쟁이 나면 옛 왕들처럼 제일 먼저 도망갈 사람들인 양, 자기 이익과 편리에만 눈이 멀어있으니... 신뢰를 신뢰할 수 없는 신뢰판이 되었다.

 

 

(The Word News(더워드뉴스) = 레헴가정생활연구소 대표 도은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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