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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의 말과 사상] (10) 숙의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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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분배, 기업규모, 기업입지, 금융배분, 고용환경 등 경제·사회문제를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깊이 생각하고 숙고하여 공개적인 토론을 거처 결정하고 결정결과를 집행하는 것이 '숙의민주주의(熟議民主主義, deliberative democracy)'다. 이는 신좌파를 이끌고 있는 하버마스를 중심으로 개발된 콘셉트다. 이에 따르면 개인들의 행동들이 자생적으로 조정되는 시장과정 대신에, 토론하고 숙의하는 정치과정의 결정을 통해서 그들의 경제·사회적 삶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적 숙의 제도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다. 첫째로 그것은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하여 공개된 토론과정을 통해서 관점, 견해 ,이론 등 주관적 생각들을 자유롭게 서로 소통하기 위한 틀이다. 둘째로 그런 틀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할 추상적인 행동규칙, 즉 강제, 허위, 조작, 위협, 협박, 사기, 기만 등과 같은 특정의 행동을 금지하는 행동규칙들로 구성된다. 그런 틀은 어떤 지배자도 없고 자유로운 담론이 지배하는 상태이다.

 

셋째로 담론과정은 사람들이 선호와 가치,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과 수단에 관한 지식을 학습할 수 있다. 소통행위는 이론과 선호의 가치를 가르치고 배우는 학습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그들의 지적 시계를 넓힐 수 있다. 서로 새로운 분석과 해결책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숙의정치에서 시장경제의 소비자주권 대신에 시민주권이, 시장에서와 같이 어떤 공급자가 싫으면 다른 공급자에게로 등 돌리는 '탈출(exit)' 대신에 그 공급자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항의(voice)'가 등장한다. 그러나 숙의정치에는 치명적 한계가 있다.

 

 

정치에서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틀린 말도 맵시 있게 하면 이긴다. 정치적 위선에서처럼 '사적으로는 진실, 공적으로는 거짓(private truths, public lies)'이 정치를 지배한다. 마음속에 가진 선호는 솔직한 거지만 공개할 경우에는 위조·조작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공선택론적 문제 이외에도 숙의정치에는 극복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 즉 인식론적 문제가 있다.

 

집단적 성찰과 토론을 위해서는 정치적 의견·선호·생각 등을 또렷하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집단적 성찰과 토론을 특징으로 하는 숙의정치에는 참여자들이 제각각 자신의 생각, 선호, 의견을 완전히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틀렸다. 인간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 선호 등의 내용은 통계수치로 표현하거나 또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외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암묵적 초의식적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자유'라는 말을 아주 즐거워하는 어느 한 사람에게 '왜 그 말을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네~ 그냥 좋아요' 또는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이 자유를 참 좋은 가치라고 말해서.....' 등으로 대답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백화점에서 노란 스카프를 사는 어느 여성에게 '왜 그런 스카프를 샀느냐'고 물으면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하지 못하지만 노란 스카프를 선택할 줄을 안다. 사람들은 공정한 게임이 무엇인가를 말할 수 없지만 그러나 게임을 보면 공정한 게임 또는 불공정한 게임을 가려낸다. 정의감, 법감정 또는 어감 등은 모두 암묵적 또는 초의식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머릿속에 지니고 있는 지식들 가운데 90% 이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암묵적(초 의식적)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지니고 산다. 사람들은 자신의 머릿 속에 지니는 암묵적 초의식적 지식을 타인들과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실패한 근본원인도 도처에서 분산되어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런 암묵적 지식을 수집하기가 불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암묵적 지식의 전달과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게 시장을 비롯한 사적 세계에만 가능한 가격구조다. 암묵적 지식들은 시장참여자들의 구·판매행위를 거처 가격구조에 반영된다. 가격구조는 어떤 정신도 수집하기 불가능한 그런 지식을 수집가공하여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거대한 소통체계다. 가격에 사람들이 적응하는 건 가격에 구현된 타인들의 경험을 학습한 거나 다름이 없다. 흥미로운 건 가격을 통한 비언어적 학습은 우리의 귀와 눈으로는 물론 인지능력으로도 전혀 볼 수도 들을 수도 알 수도 없는 범세계적인 거시우주로까지 확대된다는 점이다.

 

우리사회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집단적 성찰·논의, 즉 숙의정치가 아니라, 자유의 정책이다. 소득주도성장, 공정·포용경제 등 각종 명분으로 노동규제를 비롯하여 경제활동의 가로막는 첩첩한 규제를 해체해야 한다.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체제는 수백만 명, 아니 수천만 명이 제각각 지닌 또는 새로이 발견된 지식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자생적 시장질서라는 걸 주지할 필요가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 민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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