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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의 경제철학 향연] (10) 자생적 질서 사상의 선도자 하이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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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내가 뭐랬어!"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에 한마디 남긴 하이에크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인 하이에크

 

1989년 11월 어느 날 노쇠한 그러나 아직도 눈에는 빛이 나는 90세의 할아버지가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병원 병상에 누워 살며시 눈을 감고 있었다. 의사로서 영국의 런던에서 살고 있었던 아들이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그가 TV를 틀었다. 군중 속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 아들이 아버지를 부르면서 "저거 보세요, 저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있어요." 지긋이 눈을 뜨면서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본 그 할아버지의 한 마디: "거 봐, 내가 뭐랬어!" 그 할아버지가 영국의 유명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誌)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인'이라고 칭송했던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하이에크(Friedrich A. von Hayek 1899∼1992)였다.

 

하이에크는 1930년 초부터 줄기차게 토지 자본과 같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금지된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비효율적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유럽대륙은 물론 영미 등 지구촌의 대부분이 사회주의로 경도되었던 시기였다.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라고 믿는 세상에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고 그가 주장할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 뿐이었다. 사회주의에 대한 당시의 믿음은 너무도 강했다. 심지어 197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은 사회주의가 붕괴되기 3개월 전까지도 그 체제는 자본주의만큼 번영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망한다는 하이에크의 말은 적중했다. 흥미로운 것은 왜 사회주의가 망했는가의 문제다. 망한 이유를 그는 지식의 문제에서 찾았다. 정부의 계획당국이 전지전능하지 못한 이상, 시민 각자의 수요에 관한 생각과 그의 선호 등, 계획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러니까 정부는 시민들에게 각자가 가진 지식을 이용할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게 하이에크의 반사회주의 논리였다.

 

 

전지전능한 정부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로 자유와 시장경제의 존재 이유를 어느 누구보다도 설득력이 있게 제시했던 인물이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 출신의 하이에크였다. 그는 정부는 부와 번영을 창출할 지적 능력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정부는 안다고 자만하지 말고,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고, 작은 정부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와 시장의 자생적 질서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이 없으면, 다시 말하면 사람들에게 자유를 허용하면 시장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무질서를 야기한다는 목소리가 높을 때, 하이에크는 시장은 스스로 유지·확장되는 자생적 질서라는 엄연한 사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그런 질서의 형성과정에서 지식이 창출되고 성공적인 것이 확산되는 등, 그 어떤 정부도 할 수 없는 풍요와 부를 창출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은 빈곤, 실업, 불황이나 저성장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게 자생적 질서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주장하면서 풍요의 원천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대기업의 경제력 문제도 시장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 정부가 개입하면 빈곤, 실업, 저성장 등도 정부개입의 탓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청소년기에는 심정적 사회주의자였지만 은사인 미제스를 통해서 확고한 자유주의가 된 하이에크는 심지어 1930년대 대공황까지도 국가개입의 탓이라고 했다. 당시 경기불황은 신용의 과잉팽창으로 야기된 인위적 붐의 불가피한 현상이었으며 왜곡된 생산구조가 정상화되기 위해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할 과정인데, 이때 불황의 해법으로 사용되는 정부지출이나 규제는 그 과정을 치명적으로 방해한다는 논리였다.

 

 

노벨경제학상의 영광이 찾아오다

 

20세기 전반 이후 동유럽과 소련을 지배했던 공산주의와 서구를 지배한 케인스주의로 자유와 시장경제는 세상에서 사라지다시피 했다. 개인의 자유는 소멸되었다. 하이에크는 인류가 '노예의 길'을 가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1947년에는 스위스의 호숫가인 몽펠르랭으로 세계에 흩어져 있던 자유주의자들을 불러들여 이념전쟁의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정부가 세금을 올리거나 빚을 내서라도 개인들의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복지국가 이념이 케인스의 망령과 함께 인류를 빈곤으로 몰아갔다.

 

이때 쯤에는 하이에크도 이념전쟁(ideas war)에서 지쳤고 나이도 들었다. 세상은 그가 말한 것을 진지하게 들어주지도, 그가 생각한 만큼 인정하지도 않았다. 비엔나의 고향에 돌아온 그 노(老)학자는 결국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다. 세상이 야속하게만 보였다. 그러나 그 무렵, 놀라운 행운이 따랐다.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발되었던 것이다. 우울증이 갑자기 사라지고 생기도 되찾았다. 그 시기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경제를 강타했다. 케인스주의가 엉망으로 만든 이 세상을 구할 자를 찾고 있었다. 세계의 눈은 하이에크에게로 쏠렸다.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그를 등에 업고 혁명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규제를 혁파하고 조세부담을 줄였다. 정부의 돈줄도 묶었다. 그 결과는 전대미문의 번영이었다. 물가가 잡혔고 고용과 소득도 급증했다. 하이에크가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인민을 굶주림에서 구할 방도를 찾던 덩샤오핑은 그를 불러 한 수를 배웠다. 중국은 농산물의 자유시장을 허용한지 3년도 못 되어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인류가 하이에크를 만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 민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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