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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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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대한 인터콥선교회 본부장 최바울 선교사의 기고문입니다. 이슬람권 전문가인 최 선교사는 중동아시아 10년 사역 후 서울대, 고려대, 아세아연합신학교 강사, 한동대 국제학 교수와 국제중앙아시아학회(IACAS) 회장, 한국중동학회 및 국제 NGO학회 임원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1. 배경

 

아프간 내전과 전쟁은 오래된 것이다. 대영제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기에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완충지로 설정하고 영국은 북진하지 않으며 제정 러시아는 남진하지 않는다는 협정을 맺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세계 제국의 틈바구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협정은 전통적인 러시아의 남방정책에 기인한다. 러시아는 엄청난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북쪽은 북극으로 접근이 어렵고 서쪽은 영국과 프랑스 강대국이 대서양 진입을 막고 있고, 동쪽은 일본과 미국이 태평양 진입을 막고 있다. 남쪽을 뚫어야 러시아의 세계 경영이 가능하다.

 

1979년 급기야 소련(러시아)은 아프가니스탄을 무력 장악했다. 그러나 9년 반의 무력점령 통치는 아프간 이슬람 전사들 무자헤딘의 무력 저항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때 무자헤딘의 반소(反蘇) 무력투쟁을 주도한 사람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빈라덴(Bin Laden)이었다. 빈라덴은 파키스탄으로 가서 파키스탄과 아프간 파슈툰족 이슬람전사들, 즉 탈레반들을 캠프에 모아서 훈련하고 무력 저항운동을 조직화하였다. 이때 미국 CIA의 서아시아팀이 빈라덴에게 재정 및 무기를 지원했다. 미국의 지원이 없이는 빈라덴과 탈레반이 결코 소련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몰아낸 빈라덴은 자기를 도와준 미국을 공격했다. 그것이 2001년 9.11사태이다. 왜 빈라덴은 미국을 공격했을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카에다(Al-Qaeda)를 알아야 한다.

 

 

알카에다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에서 발달한 지하드(jihad), 즉 이슬람 무력 저항세력이다.

 

미국 유학을 하고 돌아온 사이드 쿠틉(Sayyid Quṭb 1906-1966)은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했다. 그는 미국 유학 중 이기주의, 물질주의, 성적타락 등 서구 문명의 한계를 직시하고 앞으로 인류사회의 대안은 '타락한 서구문명'이 아니라 이슬람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슬람 국제운동을 주창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를 먼저 샤리아 율법이 지배하는 이슬람국가로 만든 후에 다른 나라로 이 모델을 수출하자고 한데 반해서, 쿠틉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이슬람국제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 이유는 세계가 서구문명으로 심각한 타락의 상황에 있으니 국제운동을 전개하여 타락한 패권적 서구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이슬람의 통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쿠틉은 1966년 대통령 암살혐의로 사형을 당했는데 그의 사상을 기반으로 알카에다의 글로벌 지하드(global jihad)가 출범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 정부의 박해를 피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도주했는데 당시 사우디와 이집트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이들을 받아들였다. 학교는 운영되기 시작했는데 교사가 절대 부족한 사우디는 무슬림형제단 청년들을 초중고 교사로 채용하였다. 우리나라 전교조 교사들처럼 사상으로 무장된 무슬림형제단 교사들의 학생들에 대한 사상적 영향력은 엄청났다. 이때 사우디 갑부의 아들이며 수줍음을 많이 타던 고교생 빈라덴이 무슬림 전사로 바뀌게 되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알카에다의 글로벌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부귀영화를 버리고 파키스탄으로 떠나게 되었다.

 

빈라덴의 무력투쟁은 알카에다의 사상에 따른 것이다. 반제국주의 사상에 따라 소련을 몰아내고 이어서 자기들을 지원해준 미국을 공격한 것이다. 서구 패권적 제국주의 소련과 미국은 동일하게 이슬람의 적이기 때문이다. 빈라덴과 알카에다가 아프간에서 무자헤딘 탈레반을 이끌게 된 것도 전통적 이슬람사회에서 과거에 볼 수 없던 높은 수준의 글로벌 비전과 이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9.11 사태 이후 미국은 알카에다를 응징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무력 군사개입을 단행했고 탈레반 정부는 붕괴되었다. 빈라덴은 도주하여 은둔하였고 파슈툰족 출신의 친미성향인 카르자이 대통령이 등장했다. 친미정권 출범 이후 약 2만명의 미군이 20년 가까이 주둔했다. 그런데 탈레반은 과거에 미군이 준 무기로 반미 무력투쟁을 전개하여 결국 승리한 것이다. 이렇게 미국은 탈레반에게서 빼앗은 아프간을 돌려주고 20년 만에 철수하였다.

 

 

 

2. 탈레반의 승리의 원인 / 미국의 패배원인

 

탈레반은 지방뿐만 아니라 수도 카불을 전격 점령했다. 지방은 전투를 통해서 정부군을 추출하고 장악했으나 수도 카불은 아쉬라프 가니(Ashraf Ghani) 대통령이 해외로 도피를 가고 정부군이 도주하여 수도 방위군이 해체되면서 사실상 무혈 쿠데타로 장악했다. 탈레반 무장반군은 8월 15일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탈레반을 몰아낸 후 20년 동안 아프간에 수천억 달러의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아프간을 다시 탈레반에게 넘겨줬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탈레반이 전격적으로 아프간 정부군을 제압하고 승리하게 된 원인은 바이든 정부의 성급한 미군철수도 있지만, 잘마이 칼리자드 미 평화특사가 러시아와 중국, 파키스탄 특사 및 아프간 정부, 탈레반 반군 측과 카타르 도하에서 회담을 수차례 했는데, 한마디로 개념 없고 순진(naive)하게 회담에 임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대표를 끌어들인 것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탈레반과 협상하고 먼저 미국 국민을 철수 시킨 후 미군의 모든 기지를 파괴했어야 했는데 미국인 약 2만명이 아직 아프간에 있는 상태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 미국에서는 "바이든 정부는 왜 탈레반을 신뢰하고 있는가?"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탈레반 반군이 이렇게 빠르게 승리하게 된 배후에는 파키스탄과 중국이 있다. 중국 시진핑 정권은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로 고속도로 공사 등 막대한 자금을 파키스탄에 투자했다. 파키스탄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반세기 동안의 미국과의 군사동맹 체제에서 사실상 이탈하여 중국과 위험할 정도로 가깝게 되었다.

 

이에 미국은 파키스탄의 상대적국인 인도의 아프간 진출과 투자를 독려하면서 중국 및 파키스탄과 적대적인 인도를 통해 파키스탄-중국의 지정학적 관계를 제어하려고 했다. 이에 반발한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배후 조정하여 아프간에서 미국과 인도 양대 세력을 다 몰아내게 된 것이다. 이번 아프간 사태 배후에는 중국, 파키스탄, 인도 그리고 미국 간 구조적이며 지정학적 긴장관계가 작동했다.

 

 

3. 전망

 

탈레반 반군이 수도 카불을 장악한 직후 암살 위협이 있다는 이유로 가니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도주했다.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하고 군대가 자진 해체되자 대통령 경호실 경호요원들이 도주했다. 결국 그는 경호원 몇명과 공항을 통해 도주하였다.

 

그러나 제1부통령 암룰라 살레흐(Amrullah Saleh)는 도주하여 지방에서 저항군을 모집하며 목숨을 다해 싸우겠다고 선언했으며, 이후 과거 미국 군사 개입 때 미국에 적극 협조하여 탈레반에 기여한 1등 공신으로 후에 암살당한 북부 우즈벡 군벌 아마드 마수드(Ahmad Masoud)의 아들을 중심으로 카불에서 100km 떨어진 판지시르(Panjishir)지역에 저항군을 조직하였다. 탈레반은 벌써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탈레반 무장군을 이곳으로 급파하여 불씨를 끄려고 노력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러시아 등 외세가 이들 저항군을 지원할 경우 아프간 상황은 판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이나 카불 정치 상황이 과도기라서 지금은 외세가 관망하고 있다.

 

한편 탈레반 세력은 승리를 선언했으나 국가 통치 기조와 관련하여 내부 불협화음이 벌써 노출되고 있다. 공식 대변인인 무자히드는 탈레반 세력을 대변하여 첫번째 공식회견을 열고 앞으로 "언론의 자유 보장하고 보복은 없을 것"을 천명하고 "전통 부르카 외 비교적 개방적인 히잡이나 차도르 등도 허용하고 여성 교육 직업 활동을 보장할 것"이라며 여성들의 인권을 강조했다. 과거 집권기인 1996∼2001년 탈레반 통치 때 여성들과 여자아이들에 대한 무자비한 인권 탄압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의식해서 "우리는 과거 탈레반이 아니다"라고 유화적이고 개방적인 정책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의 고위급 인사인 와히둘라 하시미는 바로 다음날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강경 이슬람 율법주의자이며 탈레반 최고 지도자인 히바툴라 아쿤드자다가 통치할 것이며 아프가니스탄은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 이슬람 샤리아 법에 따라 통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 종교지도자를 내세워 말했지만 카타르 협상을 주도한 탈레반 리더그룹과 탈레반 전사그룹 사이에 내부적으로 노선 갈등이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것이 빨리 봉합되지 않으면 탈레반 세력은 다시 실패할 것이다.

 

또한 카불에는 탈레반이 하얀색 탈레반 국기를 들고 입성했는데 알카에다 무장세력은 검은색 국기를 들고 입성했다. 카불 시민들은 탈레반, 알카에다, IS 전사들로 인해 통치체제가 공식화되지 않는 과도기에 극단적인 공포 속에서 두려워하고 있다. 빈라덴 이후 알카에다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세력이 극히 약화되었는데, 최근 지난 수년 동안 아프간 내 탈레반 가운데 불만을 품은 전사들이 탈레반을 이탈해서 알카에다 또는 IS 아프간 지부를 만들고 자기 그룹 재건을 위해 활동해왔다.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안정은 탈레반 세력이 구축한 아프간 정부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느냐에 달려 있다. 중국은 대통령도 정식 선출되지 않고 내각도 구성되지 않는 상황의 탈레반 정부를 즉각적으로 공식 인정했다. 중국이 배후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은 어떠한 형태든지 중국의 아프간 장악을 막아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아프가니스탄을 중국에 내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 남중국해, 일본, 키르기스스탄, 아프간 등에 미군을 두고 중국 포위망을 구축했다. 몽골은 전통적으로 중국과 사이가 안 좋기 때문에 유사시 언제든 들어가면 된다. 미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구경만 하면서 서아시아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했으며, 캐나다는 탈레반 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그들은 정당하게 선출된 민주 정부를 강제로 인수하고 교체했다"고 비난했다. 민주적 선거 절차를 통해서 선출된 대통령과 그 정부만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탈레반 지도부는 탈레반 정권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도록 계속하여 물 밑에서 협상하는 노력을 기울이고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프간을 떠난 가니 대통령은 이틀 후 아랍에미리트에 나타나서 자신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갈 협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탈레반이 얼만큼 수용할지가 앞으로의 아프가니스탄의 향방을 가늠하는 것이 될 것이다. 모든 정파가 대통령 후보로 나와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가 구성될 때 아프간은 정상 국가로 발돋음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탈레반 세력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은 계속 갈등과 전쟁, 이슬람 극단주의 독재 체제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자금 동결 결정이 탈레반 전사들에게 심각한 신뢰의 문제가 되었다. 탈레반 정권은 이란 자금을 40년째 동결하고 있는 미국이 미국 내 아프간 자금을 동결한다면 자신들의 정권은 유지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공항 진입을 막고 남아있는 미국인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도 어렵지만 탈레반 통치는 결코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공인된 아프간 정부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 내 아프간 정부 자금을 탈레반에게 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법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8월 23일까지 탈레반 지도부는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정상 국가로 갈 것을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조만간 정부 구성을 마치고 정치적 안정을 이루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여전히 탈레반 전사들이 미국인을 색출하려 집집마다 수색하며 다니고 있다. 지금 아프간 내 남아있는 미국인들과 인도인 등 외국인들은 공포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바이든 정부는 아직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자 미국과 유럽 정치권에 탈레반에 대한 불신이 고조됐다. 그들은 아프간 상황이 장기화되고 아프간 난민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올 것을 염려하며 아프간 참전국들에게 난민 수용을 촉구하고 나섰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황이다.

 

 

4. 마치는 말

 

해결책은 간단하다. 키는 탈레반에게 있다. 탈레반 지도부가 1세기 이상 지속된 내전과 전쟁을 끝내자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전쟁만 하고 살 것인가?

 

첫째, 탈레반 지도부가 과격한 탈레반 전사들을 통제하고 아프간 국가 정체성과 정책 기조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빨리 선언하고 즉시 그에 따른 후속 조처, 즉 로드맵을 제시하고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 처음 약속한 대로 보복을 즉각 중지하여 과거 외국인이나 정부에 협력하거나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색출 또는 처단을 중지해야 하며 카불 공항을 개방하고 출국을 원하는 외국인들을 막지 말아야 한다.

 

 

둘째, 탈레반과 이전 정부 지도자 등 그 반대파가 자유롭게 참여하고 국제선거감시단의 참여하에 민주적 선거를 실시하여 새 정부를 출범시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정상국가가 되도록 조속히 로드맵을 발표해야 한다. 현재 가니 대통령은 아라비아에 도주해 있고, 미국 군사개입 이후 세워진 친미 카르자이 대통령과 압둘라 압둘라 아프간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이 탈레반 지도부와 카불에서 협상을 하고 있다. 카르자이는 탈레반이 주를 이루는 파슈툰족이고 압둘라는 두번째 큰 종족 타직족 군벌로서 우리나라를 좋아하는 강력한 친한파이다.

 

셋째, 정상국가가 되려면 여성 인권을 인정하고 여성에게 교육받을 권리와 직업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소수 종교집단, 시아파 하자라족과 소수 기독교인들의 종교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하자라족은 몽골제국이 중동을 지배하던 시절 중동 서아시아에 진출했던 몽골인들로 과거 정세 변환기마다 이슬람 순니파 정권(무자헤딘, 탈레반 등)의 타깃이 되어 매번 많은 희생양이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8월 22일 기자회견에서 아프간에 있는 "미국인, 외국인, 외국인 협력자들,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안전하게 데리고 나오겠다고 약속했다. 기독교인에 대한 언급은 이전 협상에서도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다. 미국 교회지도자들이 나서서 아프간 내 기독교인의 안전문제를 국제사회에 촉구하며 탈레반 행태를 감시하여 아프간 기독교인들이 참수되지 않도록 국제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만약 탈레반 세력이 정상국가를 지향하며 로드맵을 설정하고 빠르게 가지 않으면 아프간 내 저항군이 갈수록 강해질 것이며 또한 외세가 저항군을 지원하면서 아프간은 또 다시 끝없는 전쟁의 나락으로 빠져들 것이다. 시간이 없다. 앞으로 보름, 한달이 매우 중요하다.

 

 

(사진 =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더워드뉴스(THE WORD NEWS) = 최바울 선교사(인터콥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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